TAG Clouds

New Postings

  •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 안네 프랑크

2008.01.26 11:26

식민지의 국어시간

조회 수 9243 댓글 0
식민지의 국어시간
.             -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가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배우기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않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않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서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

그래... 영어로 수업 잘 해봐라 이것들아.

[ 관련 글 ]
TAG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75 뮤지컬 "I Love You~" file 2005.12.08 9856
174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file 2009.01.05 9201
173 바깥에 먹으러 나갔습니다~ file 2006.06.04 9301
172 바빴던 주말 file 2004.11.15 8663
171 바쁜 아빠들의 좋은 아빠되기 2 file 2012.10.11 6633
170 베트남 Vietnam 갑니다~ file 2006.08.31 8902
169 변해버린 것들 2003.05.18 9045
168 별을 내 가슴에. '중미산 천문대' file 2009.01.05 9456
167 병(病) file 2004.10.03 8730
166 복수..1 file 2007.10.03 8983
165 봄이오면 file 2005.04.07 9857
164 봉숭아 피다. file 2005.09.12 8698
163 봉숭아를 화단에다 옮겨 심었었죠 file 2004.07.23 8444
162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 50문 50답 2003.03.21 7174
161 분노 2004.06.26 7545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21 Next ›
/ 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