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올 5월에 수강했던 사진강좌 선생님께서 특강을 여신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반가웠지요, 주제는 "유명 사진 작가에서 영감을 얻다" 였습니다.
얼른 참석하겠다는 회신을 한후 지난 토요일(9월 15일) 특강을 듣고 왔습니다.
오랫만에 선생님도 뵙고 사진 이야기를 들으니 인상깊었습니다.
그 때 나온 내용 기억을 되살려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쓰다보니 분량이 길어져서 2개로 나누어 담습니다.
1. 로베르 두아노 Robert Doisneau - 파리의 삶을 찍은 사진 작가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 연출의혹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이유>
2. 로버트 카파 Robert Capa -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3.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 - 찰나의 미학, 찰나의 거장
<보정과 트리밍을 반대한 브레송의 사진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진은 트리밍한 사진이다.>
4. 유서프 카쉬 Yousuf Karsh - 전설적인 인물사진 작가
<유서프 카쉬의 사진에서 처칠의 얼굴이 일그러진 이유>
5.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회화주의 사진을 장려한 스티글리츠가 회화에서 사진을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한 이유>
1. 로베르 두아노 Robert Doisneau - 파리의 삶을 찍은 사진 작가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 연출의혹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이유>
로베르 두아노는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잘 담아낸 사진가입니다.
1912년에 태어나 30년대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Rapho라는 대행사에 입사하였는데 근태가 별로 안좋았다는군요. ^^
2차대전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나치 독일 밑에 있었을때는 본인의 장기를 살려
여권을 위조하거나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주면서 레지스탕스를 도왔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틈틈히 파리의 거리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가 '만레이'와 밤의 파리로 유명한 '브라사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아노는 일상생활의 경이로움, 즉 생활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꾸미지 않은 생활속에서 나오는 예상밖의 일상적인 순간을 찾아 찍으려 노력하였습니다.
파리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생활사진들을 남겨 유명해 졌습니다.
<시청앞에서의 키스 Le Baiser de l'Hotel de Ville, 1950>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시청 앞에서의 키스'(1950)이며 1949~52년까지
<보그>지와 계약하여 엄청나게 팔렸다고 하는군요.
그의 사진들은 일상의 모습들을 예리하게 포착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청앞 키스 사진이 유명해 지자 서로 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두아노는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다가, 몇 십년뒤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소송을 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두아노는 당시 모델에게 지급했던 모델비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했고
소송이야 무마되었지만 생활사진가로서의 명성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었죠.
그후 2005년에 저 사진의 진짜 모델인 프랑수아즈 보내르라는 할머니가
당시 사진을 촬영하고 받았던 별도 버전의 사진을 경매에 내 놓아 2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비록 모델을 사용하기도 하였더라도)
그의 사진 자체로서 다시 평가받고 있다고 하네요.
<Les jambes du metro paris, 1971>
<La dactylo du Vert Galant, Paris, 1947>
<Le ruban de la mariée>
<She dances alone>
<Trois petits enfants blancs, parc Monceau, 1971>
<Le remorqueur du Champs de Mars, Paris, 1943>
2. 로버트 카파 Robert Capa -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The landing at Normandy, 1944>
'D-Day'라는 이 사진은 너무나 유명한 사진이 되어버렸습니다.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찍은 단 7장의 사진중 한장이며
수많은 전쟁영화(특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중요한 참고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래는 선명하게 찍은 많은 사진들을 신문사에 보냈으나, 암실 기사가 서둘러 현상하기 위해
드라이기의 온도를 높여놓아 현상액이 용해되어 사진이 타버렸다고 하네요.
그중에 그나마 쓸 수 있을만 한 것이 7장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사진이 타버려서 오히려 더 전쟁의 급박함을 잘 나타내 보인 것이지요.
암실 기사의 사고 때문에 더 유명해진 케이스겠지요.
로버트 카파는 원래 없는 사람입니다.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만'이라는 1913년 태생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헝가리, 유대인, 1913년... 세박자가 고루맞지요.
17세부터 사진을 찍었고 헝가리를 점령한 나치를 피해 파리로 갑니다.
그리고 아이러닉하게도 파리에서 '젤다 타로'라는 독.일. 여자를 만납니다.
하지만 타로는 반 파시즘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였고 둘은 함께 얼라이언스 포토 에이전시에 입사하죠.
프랑스에서도 나치의 탄압이 심해지자 이 둘은 "로버트 카파"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냅니다.
디테일하게요. 그리고 종군기자로서의 전쟁의 실상을 카파의 이름으로 올립니다.
1939년에 뉴욕에 정착하였고 5개의 큰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종군 기자로서의 명성을 높힙니다.
지금도 생명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카파이즘'이라고 부릅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던중 젤다 타로가 총에 맞아 사망,
프리드만 역시 1954년 베트남 독립전쟁 취재중 지뢰를 밟아 사망합니다.
카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라는 모토를 가진
<매그넘 포토스>의 창립멤버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서울에서도 매그넘 사진전이 열렸었지요.
<노르망디 상륙작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1936>
<카파와 겔다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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