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poemspace.net/epoche/01_profile_epoche_phrase.htm
다음 신현수(辛賢秀)의 언급을 참고하기 바란다.
“1. 프레이징(phrasing)-흔히 동기(motive)는 2마디, 작은악절(Phrase)은 동기의 두 배인 4마디, 큰악절(period, sentence)은 작은악절 두 개가 합쳐진 8마디의 길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규칙에 부합되지 않는 예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히 고전파와 낭만파 음악은 대개 그와 같은 규칙성을 보여 줍니다. 큰악절을 구성하는 두 개의 작은악절(프레이즈) 중, 앞의 것은 테제(Thesis) 또는 앞작은악절(Antecedent Phrase)이라고 하며 뒤의 것은 안티테제(Antithesis) 또는 뒤작은악절(Consequent Phrase)이라고 합니다. 앞작은악절과 뒤작은악절은 흔히 “질의↔응답” 또는 “진술(statement)↔확인(confirmation)”의 대화형 관계를 가집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은악절도 있습니다. 프레이징이란 바로 이들 프레이즈(앞작은악절과 뒤작은악절, 또는 그 밖의 작은악절) 단위를 구분하여 연주하는 그루핑의 기법입니다. 흔히 프레이징을 「숨을 쉬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관악기 연주자나 성악가는 실제 프레이즈의 끝 음을 음가(音價)보다 짧게 끊고 음가의 나머지 부분을 호흡에 사용하는데, 이로부터 유래된 말이라 하겠습니다. 생리적 호흡에 구애 받지 않는 기타나 피아노와 같은 악기의 연주자에게 있어서도 성악가의 호흡을 모방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프레이징 기법 중 하나입니다(프레이징 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제194페이지의 프레이징 기법에 대한 글과 관련 악보 예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악에 몰입하여 연주하다 보면 (호흡에 구애 받지 않는 악기인) 기타나 피아노 등의 연주자에게 있어서도 생리적 호흡과 프레이징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약하여 정의한다면, 프레이징이란 문장에 있어서의 쉼표(,)나 마침표(.)처럼 음악 어법에 있어서의 프레이즈(작은악절)라는 구문(構文, construction of sentences)적 단위를 표시하는 표현 방법에 해당합니다. 음악에도 말이나 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문적 구조가 존재합니다. 말이나 글에 있어서의 단어, 구, 절, 문장, 문단 등의 구문적 요소들처럼 음악에도 동기(또는 부분 동기)와 그 발전, 작은악절, 큰악절, 그리고 문단(文段, paragraph)에 대응하는 악단(樂段, part)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구성 요소로 하는 구문적 구조가 엄연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말과 글의 운율에 상응하는 리듬도 있어서 “음악 어법”이라는 표현이 과히 어색하지 않습니다.
2.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란 용어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프레이즈를 보다 작은 단위의 그룹(아티큘레이션․그룹 see. p. 26)으로 나누는 것(그루핑)을 뜻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이 경우, 명백한 잘못이긴 하지만,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프레이징이건 아티큘레이션이건 모두 프레이징이라는 말로 얼버무려 버리는 경향이(용어 사용의 혼란이) 마치 관습이기라도 하듯 아직도 잔존(殘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프레이징」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프레이징을 의미할 수도 또는 아티큘레이션을 의미할 수도 있으므로 듣는 사람이 스스로 주의해서 구별하여 들어야 합니다. 사실, 전문 음악가 중에서도 이들 용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관련 내용 see. p. 78, 참고: 프레이징이란 용어 사용의 혼란). 그리고 아티큘레이션이란 용어의 나머지 한 가지 의미는 「음을 끊는 것」입니다. 즉, 스타카토(staccato)나 스타카티시모(staccatissimo) 논․레가토(non legato) 등, 음을 끊어 연주하는 것을 두루두루 통칭(通稱)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티큘레이션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말의 사전적 의미가 그러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련의 음들을 이음줄로 묶는 것은 선율선을 “분절(分節, 마디로 나눔)”하는 것이며, 음을 하나하나 스타카토나 논․레가토로 끊어서 연주하는 것은 “유절(有節, 음을 끊어 소리 내는) 발음”이나 “또렷한 발음”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전자에 있어서의 이음줄 끝에 걸린 음을 끊는 행위는 음을 끊는 것 자체보다는 그루핑이 그 진정한 목적이라 하겠습니다. 즉, 그룹을 형성하기 위해 그룹의 마지막 음을 어떤 형태로든 다음에 오는 음(또는 그룹)과 단절시키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곧 [言(말)]에 있어서의 ‘분절(分節)’과 일치합니다. 이로써 음악에서의 ‘아티큘레이션’이란 용어 역시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대체로 그대로 물려받아 “그루핑(분절)”과 “음을 끊어 소리 내는 것(유절 발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음악에서의 이러한 발음(發音) 현상은 언어에서의 그것(발음 현상)과 유사한 데가 있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음악은 언어, 즉 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詩)와는 서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음악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말(가사, 시)→성악곡→기악곡>으로 연결되는 연관성은 누구든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이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사시나 연애 감정을 담은 서정시 그리고 신을 숭배하고 예배하는 찬양의 시 등을 노래한 것이 성악곡의 기원이며, 악기란 오랜 세기(世紀)를 노래 반주용 도구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터이며, 그런 연후에야 점차 그 기능과 연주법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게 되어 본격적인 기악곡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기악곡조차도 말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겠습니다. 언어와 성악곡 그리고 기악곡. 이들의 관계란… 언어(가사)와 음악적 영감을 결합하여 만드는 것이 성악곡이라면, 성악곡이라는 원료 또는 재료를 이리저리 가공하여 만든 레고 블록(LEGO block)으로 조립하여 만드는 것이 기악곡이 아닐는지. 인간이 태어나서 요람에서부터 먼저 배우는 것은 (기악이 아니라) 말과 노래입니다. 물론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도 그랬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국어의 발음 현상에 길들여진 소리에 대한 감각을 제2의 천성(天性)으로 하여 작곡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제2의 천성을 가진 연주가들이 그것을 연주하고 관객은 듣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언어가 다르면 음악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인과 관계가 성립합니다. 특히, 운율이나 구문법(構文法, sentence structure)적 구조 등을 반영하는 음악 어법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서양음악의 아티큘레이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서양 언어의 아티큘레이션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의 아티큘레이션은 언어의 아티큘레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어쩌면 언어의 아티큘레이션으로부터 유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티큘레이션’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가 말(언어)의 발음 현상과 관련이 있음(see. p. 70)을 단지 우연으로 돌릴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서양의 대표적 언어 중 하나인 영어를 말할 때의 아티큘레이션, 즉 분절(分節, 그루핑)이나 유절(有節, 음을 끊어 소리 내는) 발음 현상은 첫째, 악센트와 관련한 운율적인 것과 둘째, 단어 구 절 등의 구문법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것, 셋째, 감정이나 그 밖의 표현적 욕구 등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The book is on the desk.」라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을 법한 이 영어 문장을 말할 때, 지난 세기의 아동극에나 등장하던 원시 깡통 로봇이 아닌 한 여섯 개의 단어를 각기 구분하여(아티큘레이션으로 끊어서) 말하지는 않습니다. 원어민(native speaker)의 말하는 품새를 들어 보면…, "The book"은 "The-Book(ðǝBúk)"으로 그리고 'on the desk' 역시 "on-the-Desk(ǝnðǝDésk 또는 좀 더 부드럽게 혀를 굴려 ǝnǝDésk)"로, 마치 악센트가 'book'이나 'desk'라는 음절에 있는 하나의 단어인 것처럼 붙여서 말합니다. 그리고 'is'는 약화되어 거의 발음하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 「"The-Book-is," "on-the-Desk"」의 두 합성(?) 단어, 즉 두 마디(articulation)만을 말하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단어 간의 연결 발음에 있어서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 쪽에 강세가 주어집니다. see. p. 88, 참고: 영어 단어의 품사별 강세). 이는 강세가 없는 단어들을 강세가 있는 단어에 연결, 하나로 그루핑함으로써 운율을 조성(組成, makeup)하여 발음하는 운율적 아티큘레이션의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문장을 「The book is」라는 “주어+동사” 부분과 「on the desk」라는 전치사구(prepositional phrase)로 양분하여 구분하는 구문적 아티큘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전화의 감도가 좋지 않아서 듣는 사람이 「Where?」라고 자꾸 되묻는다면, 「ón․thé․désk」라고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서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표현적 아티큘레이션의 일종이라고 하겠습니다.
3. 그루핑(grouping); 악보2는 코스트의 기타 연습곡 첫머리의 8마디로 된 큰악절 하나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큰악절은 각기 4마디로 된 두 개의 작은악절(프레이즈, phrase)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악절은 아티큘레이션에 의해 두 마디씩으로 다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미 이야기한 바 있듯,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의 구분은 대개 이음줄로 표시합니다(흔히 아티큘레이션의 이음줄만 표시하고 프레이징을 나타내는 이음줄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아티큘레이션의 이음줄에 의하여 프레이징의 위치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음줄이나 또는 그 밖의 방법에 의해 음렬을 나누어 개별 그룹들을 형성하는 것을 그루핑(grouping)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이를테면 악보2에는 이음줄에 의해 프레이즈․그룹과 아티큘레이션․그룹들이 그루핑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타 악보에는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이 곡만은 특이하게도, 시중에서 구입한 악보(see. p. 128, 참고: 코스트 기타 연습곡의 출처)에 아티큘레이션(그루핑) 이음줄이 악보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단, 회색의 프레이징 이음줄은 저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이하, 이 책에서 이 곡을 제외한 나머지 기타 악보에 그려진 그루핑의 이음줄은 모두 저자에 의해 표시된 것입니다, 원전 악보나 출처가 된 악보에는 없는. 단, 기타(guitar) 악보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4. 아래 악보1에서 볼 수 있는 나 와 같이 이음줄(slur) 아래에 스타카토 점이 표시된 기호를 메조․스타카토(mezzo staccato see. p. 71)라고 합니다. 음높이가 같은 음, 즉 동음(同音) 둘을 완전무결하게 레가토로 이어 연주하면 두 개의 음으로 들리지 않고 음가(音價)가 두 배인 하나의 음으로 들리게 됩니다. 이는 동음 간을 이음줄(slur)로 연결하면 이음줄이 아닌 붙임줄(tie)이 되는 기보법의 이치와 일치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동음 간을 (붙임줄이 아닌) 이음줄로 연결하고자 할 때에는 이와 같이 메조․스타카토를 적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여러 음들을 이음줄로 연결하면서 그 내부에 연속되는 동음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행여 그것이 붙임줄인 양 보일 염려가 없는 한, 굳이 스타카토 점을 찍어 메조․스타카토임을 표시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 또한 기보상의 관습입니다
악보1은 「바이어(Beyer, 국내에서는 흔히 ‘바이엘’로 통함) 피아노 교본」의 제19번 곡입니다. 악보 중에는 이와 같이 슬러(slur) 또는 이음줄이라고 하는 호선(弧線, a curved line)이 많이 그려져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이음줄들은 이음줄로 연결한 음들을 레가토(legato)로 잘 이어 연주하라는 표시입니다. 즉, 이음줄로 연결된 “일련의 음들(= 음렬 see. p. 26, 참고: 음렬)”을 레가토로 이어서 연주하고 이음줄이 끝나는 곳의 음은 적절하게 끊습니다. 흔히 가볍게 끊습니다. 관악기 연주자가 텅잉(tonguing see. p. 26, 참고: 텅잉)을 하거나 숨을 쉴 때처럼, 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의 방향을 바꾸거나 활을 선에서 떼어 낼 때처럼 그렇게 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음줄이 끝나는 곳의 음을 어떻게 끊느냐 하는 점보다는 레가토로 연결된 음렬(音列)이 한 번의 호흡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도록, 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한 활로 그어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도록, 그들을 결속시키는 데 더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이음줄 끝의 음을 끊는 것은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음줄은 이음줄로 연결된 음들을 레가토로 연주함으로써 그들을 한 묶음 또는 한 그룹(group)으로 들리도록 하라는 표시인 것입니다. (see. p. 75, 참고: 악기에 따른 레가토의 차이)
악보1. 레가토 이음줄 ― 바이어 피아노 교본, 연습곡 제19번
그리함으로써(일련의 음들을 그룹으로 묶음으로써) 이들 이음줄은 프레이징(phrasing)이나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악기에 따라서는 악보에서 이와 같은 이음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타(guitar) 악보가 그렇습니다. 기타 악보에는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합니다. 한데, 그 이유를 기타 특유의 「슬러 주법」에 대한 기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그 이유의 전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려고만 든다면, 「슬러 주법」을 의미하는 이음줄을 점선으로 한다든지 하여 혼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강구(講究)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타는 앞서 연주한 음의 여운에 왼손 운지 동작에 의한 울림을 더해 다음 음을 소리 내는 특유의 「슬러 주법」이라는 연주법이 있습니다.).
이음줄(slur)은 현악기나 관악기 등의 「슬러 주법」을 표시하는 기호이기도 하며, 보다 범용(汎用)적으로는 레가토로 연주할 것을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루핑(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을 주목적으로 하여 사용되기도 합니다(그루핑이란 일련의 음들을 묶어서 그룹화하는 것을 뜻하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항에서 설명됩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는 기존 악보를 재해석하여 프레이징 및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나 그 밖의 악상 기호 등을 상세하게 붙여 출판하는 풍조가 성행했었습니다. 그러한 악보를 원전판(原典版)에 대응하는 말로 해석판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당시 기타 음악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고 있던 터여서 다행히(?) 그러한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행히」라고 한 까닭은 해석판 악보가 유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곡가가 표시해 놓은 얼마 되지 않는 아티큘레이션의 기호쯤은 무시해 버리고 교정․편집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이음줄을 그려 놓은 것이 부지기수여서, 이후 애써 원전판 악보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 전문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에 대한 내밀한 식견과 미학적 감각을 악기 연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까지도 널리 공유할 수 있게 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 또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대개의 기존 악보(원전판)에는 악상 기호라고는 표시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기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문에, 음악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던 일반 대중이 연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의 혜택으로 부(富)를 축적하게 되자 생활에 여유가 생겨 취미를 찾게 된 다수의 신흥 부유층이 악보 출판업자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했으므로 해석판 악보의 등장은 사필귀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의무교육인 양 받고 자라 음악적 교양이 풍부했던 귀족층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기존 원전판 악보에 일반적으로 (다른 악상 기호는 물론이거니와)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 희박했던 이유란 이처럼 기존 악보의 주 구매층이었던 당시의 귀족들이 전문가적인 음악적 식견을 상식(常識, common sense)으로 하고 있어서 스스로 해석하여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표시하는 데 인색했다기보다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위한 이음줄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원전판 악보나 또는 기타(guitar)와 같은 악기의 악보라 해서(해석판 악보 역시 그 해석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정이 더 나을 것은 없습니다만)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무시하고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은 문장에 있어서의 구두점이나 끊어 읽기, 또는 절 구 단어 음절 등을 구분하거나 운율을 표현하는 등의 어법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중국어나 일본어라 해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을 (지난 20세기의 텔레비전 아동극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었던) 진화가 덜된 깡통 로봇의 말투로「삐리! 삐리! ~~~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고 아예 단어 구별조차 하지 않고 읽거나, 또는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 !」는 식으로 틀리게 끊어서 읽지는 않습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문맥(context)에 의해 단어나 구문적 구조 그리고 운율 등에 대한 식별이 능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의미하는 이음줄들이 그려져 있지 않다 해도 곡의 문맥에 의해 연주자 스스로 그것을 해석해 낼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그리해야 합니다.
연주자 스스로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해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해서 그것을 (해석판 악보를 사용하는 상황에 비해) 딱히 불리한 여건으로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연주자라면 어차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필히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에 대한 해석이 되어 있는(이음줄이 그려져 있는) 악보라 해도 그것이 작곡가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닌 한, 그와 같은 해석은 단지 참고 사항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티큘레이션은 연주자에 따라 다양하게 달리할 여지가 다분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티큘레이션에 비해 프레이징에 대한 해석은 견해를 달리할 여지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음줄의 모양만으로는 그것이 프레이징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끊어 읽기나 억양(intonation)까지 일일이 표시되어 있는 연극 대본은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대본을, 깡통 로봇이 책 읽듯 읽는 것이 아니라, 실감나게 말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대사일지라도 배우마다 대사를 말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끊어 읽기, 억양, 말투, 말씨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툰 배우의 잘못된 대사가 아닌 다음에야 관객이 그것을 못 알아듣거나 곡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음악에 있어서의 아티큘레이션 역시 그와 같은 성격의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현수(辛賢秀),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신현수, http://www.musicnlife.com/books/b04mint/p002author.htm.
5. 텅잉(Tonguing); 텅잉이란, 연주 시 음의 구분을 주는 방법이다. 노래를 할 때 가사를 말하는 것처럼, 연주를 할 때도 한 음 한 음 발음을 하여, 음의 구분을 주는 것이다. 노래를 할 때 가사가 없으면 그건 허밍이 되며, 연주를 할 때 텅잉을 하지 않으면 그건 슬러이다(물론 슬러도 텅잉의 방법 중에 하나이지만, 여기서는 텅잉의 기본을 말하는 것이다). 텅잉은 어렵지 않다. 그냥 ‘투’라는 발음을 해주면 된다. 혀의 끝이 윗니 뒤에 위치해 있다가 투- 발음을 하면, 혀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숨이 나간다. 텅잉 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텅잉과 동시에 숨을 내뱉으려고 애쓰는 분들이 있는데, ‘투’ 발음을 하면 자연스럽게 숨이 내뱉어 진다. 긴 음의 경우엔 “투 우 - -”처럼, ‘투’ 발음을 하고 정해진 박자만큼 호흡을 계속 내쉬면 된다. ‘투’라는 텅잉의 발음은 악기에 대고 말하기의 기본이다. 실제 연주를 할 때는 무조건 투투, 라고 발음을 하지는 않는다. 노래를 할 때 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지 않듯이, 텅잉도 자연스럽게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여러 방법으로 연주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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