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폭이 6m되는 철창안을 왔다갔다 어슬렁 거렸다.
5년뒤 그 철창이 없어졌을 때에도,
곰은 여전히 그 6m 안에서만 왔다 갔다 했다.
곰 한테는 여전히 철창이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제도나 규칙 보다, 거기에 순응해 버린 의식이 더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다.
'어쩔 수 없어', '전에 누가 해 봤는데 안돼', '아직은 무리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먼저 포기해버리는 패배의식이 의지와 에너지를 꺾고 현실을 더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실험결과가 있다.
쥐를 물이 담긴 유리병에 넣어두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시간을 측정하는데,
더이상 발버둥 치지 않을때 까지의 시간이
처음에는 1시간에서 40분, 30분 줄어들다가 나중엔 5분, 1분으로 줄어드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쥐끼리 교배하여 나온 새끼들은
그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한다.
억압의 대물림이다.
해도 안된다는 의식이 유전자든 교육이든 대를 이어 흐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대를 이은
패배의 유전자가 컵을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그냥 꺾는거다.
5분 정도 버둥거리다가 그냥 물에 떠 있는다.
대를 거듭할 수록 시간이 짧아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물이 가득 담긴 좁은 컵안에 들어있는 것이 힘들고 위험하고 잘못된거 아닌가?
넓고 깊은 산에서 계곡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6m짜리 철창안에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닌가?
왜 해보지도 않고, 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아니 아예 이게 잘못된거 라는 인식도 하지 않고 있는거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극복 의지는 꺾이지 말아야하는 것 아닌가,
니체의 말처럼 그 의지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 고통 받더라도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을때
'그래 다시 한번.' 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